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비닐봉지는 바람에 흔들리고, 꽃은 피었다가 씨앗이 되며, 나무는 공기의 나사못에 붙잡힌 듯 흔들린다.
별은 돌 속에서 깨어나고, 죽은 조각가는 별이 되어 다시 금구원으로 돌아온다. 김영 시인의 시에서는 사소한 사물이 어느 순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언어로 변한다.
제21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작품집 <예민한 봉다리>(인간과문학사)는 일상의 투정과 편협함에서 한 걸음 물러서 '본래의 나'를 사랑하고 세상의 그늘과 모서리에 다정하게 다가가려는 시인의 성찰을 담은 시집이다.
■ 시인의 말… 작은 판잣집 같은 생각들을 묶어 담장 밖을 바라보다
동쪽 문을 열어두고
해 뜨기를 기다리던
작은 판잣집
그 판잣집 같은 생각들을 묶어
담장 밖을 기웃거린다.
김영 시인의 시집을 여는 이 짧은 문장은 <예민한 봉다리>의 시적 세계를 압축한다.
'작은 판잣집'은 어쩌면 시인의 내면이다.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지만 동쪽 문을 열어두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집. 그리고 그 안에 쌓여 있던 생각들을 묶어 담장 밖을 기웃거린다.
시인은 수상 소감을 통해 이 시집을 "삶에 대한 푸념과 투정과 편협함에서 비로소 한걸음 물러서서 본래의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써 본 작품들"이라고 말한다.
이 고백은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자기 안에만 머물지 않고 바깥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세상의 그늘과 모서리에 다가가는 것.
그것이 <예민한 봉다리>가 출발하는 자리다.
■ 제1부… 꽃에서 '상전'의 의미를 다시 묻다
상전, 이라는 말
- 김영
상전, 이라는 말
유쾌하지 않지만
꽃들을 생각하면 흐뭇해진다
가장 높은 곳에 꽃송이들을 앉혀두고
줄기들은 단 한 번도 주저앉거나 기대지 않는다
화무십일홍이란 웬만한 꽃을 극진하게 상전으로 모시는
시간, 임기를 마친 꽃의 행장은 압축파일로 봉인하여 마침
내 눈도 코도 귀도 소용없는 씨앗이 된다
더는 문장이나 수사를 끌고 가지 않는
마침표가 된다
제가 섬기던 상전을 줄기는, 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혹은 뿌리에서 가장 먼 쪽으로 떠나는 바람에 태워 낯선 장소에 부려 놓는다. 이때 흙은 꽃의 기억을 초기화한다. 세상의 모든 어휘사전은 이때를 기점으로 상전이 위를 지칭하지 않는다고 수정한다
꽃이었던 씨앗은 흙을 상전으로 받들고 흙은 씨앗의 윗전이 되어 다음 계절이 온다. 그것이 꽃들의 의례여서 봄이 봄으로 다시 온다는 것을 줄기들은 알고 있다
가장 위쪽에서 피는 꽃도
가장 위쪽이 되고 싶은 사람도
한편으로는 제 위쪽을 늘 비워놓는다
위의 上이라는 말과 아래의 下라는 말을 붙여보면 두 글자가 같은 바닥과 같은 줄기를 나누어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줄기에서 돋는 첫 잎 같은 첫 획도 같은 방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위와 아래가 같은 마음으로 번갈아 다음 계절이 되는 것이다
- '상전, 이라는 말' 전문
'상전, 이라는 말'은 김영 시인의 시적 사고가 얼마나 독특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상전, 이라는 말
유쾌하지 않지만
꽃들을 생각하면 흐뭇해진다
'상전'이라는 말은 보통 누군가를 지나치게 떠받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시인은 꽃을 떠올리며 이 단어를 뒤집는다.
꽃은 줄기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지만 줄기는 주저앉거나 기대지 않는다. 꽃이 지고 씨앗이 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흙은 씨앗의 '윗전'이 된다.
여기서 시인은 위와 아래의 질서를 뒤집는다.
"위와 아래가 같은 마음으로 번갈아 다음 계절이 되는 것이다"
상하의 구분은 영원하지 않다. 오늘의 위가 내일의 아래가 되고, 오늘의 씨앗이 내일의 꽃이 된다. 이것은 꽃에 관한 시인 동시에 권력과 관계, 생명과 순환에 대한 시다.
더 나아가 '上'과 '下'라는 글자의 형태를 바라보며 위와 아래가 결국 같은 줄기와 바닥을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언어 자체가 시적 사유의 대상이 된다.
김영의 시는 이렇게 사물 → 언어 → 철학으로 이동한다.
■ 표제작 '예민한 봉다리'… 비닐봉지에서 인간의 마음을 발견하다
예민한 봉다리
- 김영
비닐봉지가 쉴 새 없이 소란스럽다
거기 어떤 바람이 들어 계신 건가요
도무지 안쪽과 바깥이 모두 미끄러우니
어떤 마음이 붙어 있을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들썩이는 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비껴가는,
미끄러지는 일인 것입니다
손잡이는 또 무엇입니까
몇백 년을 넘도록 썩지 않는 불사조이면서
고작 일회용으로나 쓰인답니까
조금만 담아도 불룩하니
제속을 들킨답니까
바람보다도 예민하고
작은 불길만 닿아도 소스라치며 바짝
몸을 움츠리는 이 존재는
그러나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세상을 막론하고 유무형을 다 담을 수 있습니다
절대 흘리는 일 없이
질척한 것들을 옮길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예민한 봉다리 아닙니까
- 표제작 '예민한 봉다리' 전문
<예민한 봉다리>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작품은 역시 표제작이다.
비닐봉지가 쉴 새 없이 소란스럽다
거기 어떤 바람이 들어 계신 건가요
시인은 아주 흔한 비닐봉지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곧 봉지는 인간의 마음과 겹쳐진다.
도무지 안쪽과 바깥이 모두 미끄러우니
어떤 마음이 붙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들썩이는 비닐봉지. 시인은 그것을 단순히 ‘가벼운 물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봉지가 아니라 마음이다.
손잡이는 수백 년 동안 썩지 않는 물질이면서도 일회용으로 사용된다. 조금만 담아도 불룩해지고 속을 들킨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면 시인은 묻는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예민한 봉다리 아닙니까”
여기에는 유머와 아이러니가 동시에 있다. 예민하지만 약하지 않다. 바람보다 예민하지만 세상의 유무형을 모두 담을 수 있다.
질척한 것도 흘리지 않고 옮길 수 있다. 결국 ‘예민함’은 결함이 아니라 감각의 능력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이 시집의 중요한 미덕이다.
약해 보이는 것에서 강함을 발견하고, 하찮아 보이는 것에서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선.
■ '별을 모셔오는 조각가'… 돌 속에서 별을 발견한 사람, 김오성
별을 모셔오는 조각가
- 김영
아무도 모르게
변산 바다가 용트림을 하던 날
바닷가 마을에서 별 하나가 태어났다
돌 속의 별들을 불러내어
금구원 마당에 풀어놓느라
자신이 별인 줄도 모르고 살던 조각가였다
날마다 별밭을 가꾸던 김오성 조각가는
별밭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별을 모셔오는 어른으로 성장하리라는
야무진 포부 하나를 금구원에 풀어놓았다
별을 반짝반짝하게 닦는 김오성 조각가 덕분에
금구원에서 피어나는 꽃봉오리들은
모두 별 모양으로 활짝 피어나고
금구원에 전시된 석상들은
모두 별처럼 찬란한 이야기를 품었다
별을 반짝거리게 닦는 김오성 조각가 덕분에
금구원에서는 호랑가시나무와 참대나무와 동백나무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별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별과 나무와사람과 돌이 하나가 된다
금구원 조각공원에서 별밭을 가꾸던 김오성 조각가는
2023년 10월 22일
별밭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변산의 도청리가
바람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비가 쏟아져도 젖지 않고
밤에도 캄캄하게 저물지 않는 것은
이제는 별이 된 김오성 조각가가
밤마다 이 조각공원에 별을 모시고 오기 때문이다
- '별을 모셔오는 조각가' 전문
'별을 모셔오는 조각가'는 김영 시인의 서정이 개인적 사유를 넘어 기억과 추모의 문학으로 확장되는 작품이다.
시인은 변산 바다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별 하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금구원 조각공원을 가꾸었던 김오성 조각가를 ‘별을 모셔오는 사람’으로 형상화한다.
돌 속의 별들을 불러내어
금구원 마당에 풀어놓느라
자신이 별인 줄도 모르고 살던 조각가였다
조각가는 돌에서 형상을 꺼내는 사람이지만, 김영 시인의 눈에는 돌 속에 숨어 있는 별을 불러내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별밭에서 뛰놀고, 언젠가는 별을 모셔오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던 조각가의 꿈.
그리고 2023년 10월 22일, 조각가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시인은 죽음을 끝으로 두지 않는다.
"이제는 별이 된 김오성 조각가"
조각가는 이제 자신이 가꾸던 별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변산 도청리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비가 와도 젖지 않으며, 밤에도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다.
사람이 별이 되는 순간이다. 추모시이면서 동시에 존재론적인 시다. 사람은 떠나지만 그가 만든 세계와 사랑과 기억은 남는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의 시 속에서 다시 별이 된다.
■ '공기, 나사못'… 흔들림은 무너짐이 아니라 중심을 찾는 수행이다
공기, 나사못
- 김영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없다
허공의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더 잘 버티기 위해
나무의 근원을 힘껏 조이고 있는 거다
바람은 공기가 걷는 발자국이고
공기는 회오리를 일으키는 나사못 같은 것이어서
나무뿐만 아니라
폐호흡을 하는 존재들도
공기 나사못에 꽁꽁 박혀
일생을 옴짝달싹 못한다
공기 나사못이 만든 회오리에 휘말리는 것은
영혼의 태자리를 찾아 라싸로 가는 길의
고행 같은 것이어서
모든 사물이 저의 중심을 찾아가는 닿는
순례 의식 같은 것이어서
회오리는 제 뿌리를 단단히 조이는
나무의 수행 같은 것이겠다
사물의 온갖 프로펠러에서 빠져나오거나 버려진
공기들도 다 돌기를 가진 나선형일 테니
고장난 공기, 찌그러진 공기들은 또
거대한 자석 같은 태풍에 들러붙어
한번씩 광폭해지는 것은 아닐까
바람개비를 들고 가만히 있으면
날개들이 돈다
바람이 나선형 돌기를 가진
공기인 것을 증명하듯.
- 공기, 나사못' 전문
김영 시인의 사유가 가장 독특하게 펼쳐지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없다
지극히 평범한 명제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에서 나무의 흔들림은 전혀 다른 의미를 얻는다.
허공의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더 잘 버티기 위해
나무의 근원을 힘껏 조이고 있는 거다
흔들림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버티기 위한 움직임이다. 그리고 시인은 바람을 '공기가 걷는 발자국'이라고 정의한다.
공기는 나사못처럼 회오리를 만들고, 나무와 생명들은 그 공기 속에서 흔들린다.
여기서 자연현상은 철학적 사유로 확장된다.
"회오리는 제 뿌리를 단단히 조이는
나무의 수행 같은 것이겠다"
흔들리면서 중심을 찾는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뿌리를 더 깊게 내린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시련과 혼란, 흔들림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을 찾게 하는 과정일 수 있다.
마지막의 바람개비는 이 시의 사유를 다시 일상으로 돌려놓는다.
바람개비를 들고 가만히 있으면
날개들이 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바람개비는 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움직임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김영 시인의 시가 작동하는 방식과도 닮았다. 보이지 않는 본질을 보이는 이미지로 바꾸는 것.

■ 네 개의 부, 하나의 세계… 인간에서 자연으로, 사물에서 우주로
<예민한 봉다리>는 모두 제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상전, 이라는 말', '창문의 일상', '어둠은 어디로 넘어지나', '암막 커튼', '보이지 않는 세계', '두려운 바깥' 등을 통해 내면과 일상의 사물을 바라본다.
제2부에서는 '풍경 핥는 고양이', '세수', '얼룩이 따라왔다', '자화상', '신발들', '뜬돌', '더늠' 등을 통해 몸과 풍경, 존재의 감각을 탐색한다.
제3부에서는 '버드나무 곡비기', '옷들이 자란다', '별을 모셔오는 조각가', '물푸레나무', '바다 도서관', '박각시나방', '뿔을 낭독하다' 등을 통해 자연과 기억, 생명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제4부에서는 '공용', '땅속엔 뼈가 많다', '가면', '게임', '독도, 검은 꽃', '물의 시간', '공기, 나사못', '녹는 시간', '말투를 갈아입다' 등을 통해 사회와 역사, 존재의 근원으로 사유를 넓혀간다.
따라서 이 시집의 동선은 단순하다.
나 → 사물 → 자연 → 인간 → 세계 → 우주.
시인은 일상의 가장 작은 사물에서 출발해 점점 더 큰 세계로 나아간다.
■ 김영의 시학… "바위의 침묵과 물의 시간이 시 속에 들어 있다"
소재호 시인(문학평론가)는 해설 '인간 본성과 만유 존재가 교응하는 심미적 이미지의 선시'에서 김영 시인의 작품을 '무위자연'의 세계와 연결한다.
그에 따르면 김영의 시는 무념무상의 사물에서 침묵의 심층세계를 읽어내고,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의미화한다.
특히 사물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며 자연과 존재가 서로 교응하는 세계를 구축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해설의 핵심은 결국 김영 시인의 시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에서 '사물의 존재를 생각하는 시'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
바위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침묵을 듣고, 물이 시간을 말하지 않아도 그 흐름에서 시간을 발견한다.
그래서 김영의 시에서는 인간과 사물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비닐봉지에도 마음이 있고, 꽃에도 질서가 있으며, 나무의 흔들림에도 수행이 있고, 돌에는 별이 있으며, 죽은 사람에게는 다시 별이 있다.
이러한 시적 세계를 두고 소재호 평론가는 김영의 시가 "인간 본성과 만유 존재가 교응하는 심미적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읽는다.

■ 김영 시인… 사물의 침묵에서 삶의 언어를 길어 올리다
김영 시인은 1995년 <자유문학> 시 부문 등단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파이디아>, <나비 편지>, <벚꽃 지느러미>, <다시 길눈 뜨다>, <수평에 들다> 등을 펴냈으며, 수필집으로 <뜬 돌로 사는 일>, <잘가요 어리광>, <쥐코밥상>, <파랑 한발채> 등을 펴냈다.
목정문화상 문학부문, 윤동주문학상, 석정촛불시문학상,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월간문학상, 바다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이번 <예민한 봉다리>로 제21회 김삿갓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2020년 출판콘텐츠창작지원사업 선정작 <파이디아>, 2022년 아르코문학나눔도서 선정작 <벚꽃지느러미>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전북문학관장과 전북문인협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석정문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사물, 자연, 생명, 기억, 존재, 그리고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방식은 평범하지 않다. 비닐봉지 하나를 보면서도 인간의 예민함을 생각하고, 나무의 흔들림을 보면서 삶의 수행을 생각한다. 그것이 김영 시인의 독특한 시적 감각이다.
■ <예민한 봉다리>가 우리에게 묻는 것
우리는 너무 쉽게 흔들린다. 작은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작은 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예민하다'는 말을 약점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김영 시인은 다르게 말한다.
예민하기 때문에 세상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고, 흔들리기 때문에 중심을 더 단단히 찾을 수 있으며, 작은 것에 마음을 열기 때문에 존재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예민함은 어쩌면 시인의 가장 중요한 감각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서리에 먼저 손이 닿고, 남들이 지나치는 작은 흔들림을 먼저 알아차리고, 말 없는 사물의 침묵을 먼저 듣는 감각.
김영 시인은 그 예민한 감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 흔들리는 것들의 편에 서는 시
<예민한 봉다리>를 덮고 나면 비닐봉지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도 전과 같지 않다.
꽃이 피었다가 씨앗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에도 계절의 깊은 질서가 보이고, 오래된 조각공원을 지나 돌 속에 숨어 있을 별 하나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시의 힘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힘.
김영 시인은 거창한 세계를 말하기 위해 거창한 것을 찾지 않는다.
비닐봉지에서 마음을 발견하고, 꽃에서 위와 아래의 질서를 발견하며, 나무의 흔들림에서 수행을 발견하고,
돌에서 별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에게 말한다.
흔들려도 괜찮다고. 예민해도 괜찮다고. 작고 여린 존재여도 세상의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제21회 김삿갓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시인은 "세상의 그늘과 모서리에 좀 더 다가가겠다"고 했다. 그 다짐은 <예민한 봉다리>의 시편들 속에서 이미 실천되고 있다.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모서리로, 큰 목소리가 아니라 작은 존재의 침묵으로, 완성된 것보다 흔들리고 있는 것들로 다가가는 시.
그래서 <예민한 봉다리>는 결국 흔들리는 것들의 편에 선 시집이다. 그리고 그 흔들림 끝에서 시인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 때문에 흔들리고 있습니까."
어쩌면 그 흔들림이야말로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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