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편집국장 = 오늘 아침, 한 독자로부터 짧은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다음 데스크칼럼은 문단의 양심에 대해 기고해 주세요. 아니면 진정한 작가정신, 선비정신은 무엇인가?"
불과 한 줄 남짓한 문장이었지만 그 울림은 결코 짧지 않았다.
마침 전날 신문 지면에서는 또 다른 풍경을 보았다.
시보다 긴 약력, 작품보다 화려한 직함과 상훈이 독자의 시선보다 먼저 지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 순간 시인으로서, 또 언론인으로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문학은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톨스토이가 오래전 던졌던 질문이 오늘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 사람은 무엇으로 쓰는가
레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인간 존재를 향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깊은 질문이다. 그는 사람은 빵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며, 결국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사랑이고, 경쟁이 아니라 연민이며, 성공이 아니라 양심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붓으로 쓰는가. 재능으로 쓰는가. 명함과 직함으로 쓰는가. 아니면 수많은 상패와 화려한 약력으로 쓰는가.
아니다. 작가는 양심으로 쓴다. 양심을 잃은 문장은 아무리 화려해도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진실을 외면한 작품은 박수를 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세월을 견디지는 못한다.
문학은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시대를 향한 양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 작품은 몇 줄인데, 프로필은 몇 페이지인가
요즘 신문과 문예지를 펼치면 낯설지 않은 풍경을 자주 만난다. 시 한 편은 스무 줄 남짓인데 그 아래 붙은 약력은 한 페이지를 넘는다. 직함은 끝없이 이어지고, 상훈은 쉼 없이 나열된다.
독자는 시를 읽기 전에 먼저 프로필을 읽는다. 작품보다 경력이 먼저 말하고, 시보다 상패가 먼저 인사하는 듯한 풍경이다. 물론 살아온 발자취를 기록하는 일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다양한 경험은 한 사람의 삶을 이루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경력은 작품을 대신할 수 없고, 상훈은 감동을 대신할 수 없다.
독자는 이사장이어서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수필 등을 읽는 것이 아니다. 교수여서 감동하는 것도 아니다. 수십 개의 단체 이름 때문도 아니다.
좋은 작품이기에 읽고, 진실한 문장이기에 오래 기억하는 것이다. 문학은 프로필을 읽는 일이 아니라 작품을 만나는 일이다.
◇ 선비는 자신을 높이지 않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의 관직보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더 두려워했다. 벼슬은 남이 주는 것이지만, 절개는 스스로 지키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비는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학문을 닦았고, 권력을 좇기보다 시대의 정의를 붙들었다. 작가도 다르지 않다.
붓은 출세의 도구가 아니라 진실을 기록하는 도구다. 문학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 자기 성찰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독자의 박수보다 자신의 양심 앞에서 먼저 떳떳해야 한다. 원고를 마감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글은 정직한가."
"이 문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지금 진실을 쓰고 있는가."
이 질문을 잃는 순간 문학은 기술이 되고, 작가는 직업만 남는다.
◇ 문학사는 작품을 기억한다
우리는 윤동주의 긴 약력을 외우지 않는다. '서시'를 기억한다. 김수영의 직함보다 '풀'을 기억하고, 한용운의 화려한 경력보다 '님의 침묵'을 기억한다. 그들의 이름은 직함이 아니라 작품으로 살아남았다.
문학사는 화려한 프로필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시대를 건너 살아남은 작품을 기억하는 곳이다. 상장은 세월과 함께 빛이 바래지만 한 편의 진실한 시는 시대를 넘어 다시 읽힌다. 독자는 결국 명함이 아니라 문장을 기억한다.
◇ 문단에도 양심이 있어야 한다
문단은 서로를 치켜세우는 울타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작품 앞에서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되, 부족한 작품에는 정직한 비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름보다 작품을 먼저 보고, 인맥보다 문학을 먼저 생각하는 풍토가 자리 잡을 때 문단은 비로소 독자의 신뢰를 얻는다. 문학은 서로의 이력을 늘려 주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작품을 깊게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작가에게 가장 큰 훈장은 상패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이다.
가장 높은 직함은 어느 협회의 회장이나 이사장이 아니라 '다시 읽고 싶은 시인', '믿고 읽는 작가'라는 이름이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세상을 흔드는 여름이다. 자연만 이상기후를 겪는 것이 아니다. 문학 또한 때때로 화려한 외형에 마음을 빼앗기고, 본질을 잊을 때가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오늘 우리는 거기에 한 줄을 더 보태고 싶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고, 작가는 양심으로 쓰며, 선비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으로 자신을 지킨다.
프로필은 세월과 함께 낡아도 작품은 시대를 건너 살아남는다. 직함은 명함 속에 머물지만, 진실한 문장은 독자의 가슴속에서 오래 숨 쉰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며, 문단이 끝내 지켜야 할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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