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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메데인 국제시축제'가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

"시는 극장을 넘어 거리로, 학교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베트남·호주 시인 보 티 느 마이, 제36회 메데인 국제시축제 참가기…'문화가 공동체를 바꾸는 힘' 조명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평화는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시작된다."

지난 7월 4일부터 11일까지 콜롬비아 메데인(현지 시간)에서 개최된 세계적인 문학축제로 손꼽히는 제36회 메데인 국제시축제(Medellín International Poetry Festival)에 참가한 베트남·호주 출신 시인이자 작가 보 티 느 마이(Võ Thị Như Mai)가 축제 참가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문화예술계가 주목해야 할 메데인의 성공 모델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최근 발표한 특별기고문 '세계가 메데인 국제시축제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What the World Can Learn from the 36th Medellín International Poetry Festival)'에서 이번 축제가 단순한 문학행사를 넘어 공동체와 교육, 문화외교, 평화를 연결하는 살아있는 문화 플랫폼이라고 평가했다.


"시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보 티 느 마이 시인이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시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는 점이다.

많은 나라에서 문학행사는 공연장이나 대학 강당 등 제한된 공간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지만, 메데인 국제시축제는 학교와 도서관, 박물관, 공원, 문화센터, 광장 등 도시 전체를 시의 무대로 만들었다.


메데인 국제 시 축제는 1991년 폭력과 마약 범죄로 악명 높던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시작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시 축제다. 시를 통해 평화와 화해, 공동체 회복을 추구하는 문화운동으로 발전했으며, 2006년에는 '대안 노벨상'으로 불리는 라이트 라이블리후드상을 수상해 국제사회로부터 문화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세계적인 시인을 만나고, 가족들은 공원에서 시 낭송을 함께 들으며, 노인과 청년은 같은 공간에서 문학을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

그는 "독자가 문학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이야말로 메데인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보이지 않는 헌신이 축제를 만든다

메데인 국제시축제의 또 다른 경쟁력은 치밀한 운영 시스템이다.

무대 위 시인들만이 아니라 통역사와 자원봉사자, 운전기사, 사진작가, 방송 관계자, 기술 스태프 등 수많은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축제를 완성한다.

보 티 느 마이 시인은 "참가자들이 충분히 사색하고 도시를 경험하며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일정이 세심하게 설계돼 있었다"며 "창의성은 서두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유 속에서 피어난다"고 적었다.


번역은 또 하나의 예술

이번 축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그는 퓰리처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 시인 폴 멀둔(Paul Muldoon)과의 대화를 꼽았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오가는 전문 통역은 언어의 장벽을 허물었고, 콜롬비아 시인 존 비아나(John Viana)가 낭독한 스페인어 번역시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번역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기술이 아니라 리듬과 이미지, 감정을 함께 옮기는 또 하나의 예술"이라며 "시는 번역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가 된다"고 평가했다.


시는 공연이 아니라 대화다

메데인 국제시축제에서는 낭독이 끝난 뒤 오히려 진짜 축제가 시작된다.

관객들은 시인들에게 기억과 역사, 정체성, 평화, 인간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시인들은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사라지고 시는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대화가 된다.

보 티 느 마이 시인은 "문학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는 살아 있는 문화"라고 강조했다.

문화외교의 새로운 모델

이번 축제에는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시인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종교와 정치체제를 넘어 하나의 시로 연결됐다.

그는 "베트남과 호주를 대표해 참가한 나 역시 수많은 나라의 시인들과 함께 시를 낭독하며 차이가 장벽이 아니라 이해의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체험했다"고 밝혔다.

축제 기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된 평화 낭독회 역시 메데인 국제시축제가 지역 행사를 넘어 세계적인 평화운동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문화에 투자하는 사회가 미래에 투자한다"

보 티 느 마이 시인은 글 말미에서 메데인이 세계에 던지는 가장 큰 교훈을 이렇게 정리한다.

"시는 기억을 지키고, 대화를 가능하게 하며,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심어주고, 낯선 사람을 친구로 만든다.", "문화를 믿는 도시는 대화를 믿는 도시이며, 문화에 투자하는 사회는 미래에 투자하는 사회다."

그는 "메데인에서는 시가 극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거리로 걸어 나와 교실을 찾고, 언어를 넘어 공동체를 연결하며 국가와 국가 사이에 조용한 다리를 놓고 있다"며 "그것이야말로 세계가 메데인 국제시축제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세계는 갈등과 분열, 전쟁과 혐오 속에서 새로운 평화의 언어를 찾고 있다. 메데인 국제시축제가 보여준 것은 시가 단지 문학의 한 장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지역과 세계를 잇는 문화적 공공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한국 역시 국제문학축제와 지역 문화행사를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메데인이 보여준 성공은 먼 남미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문학과 문화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믿는 모든 나라가 함께 배워야 할 하나의 모델이다. 시가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문화는 비로소 공동체를 바꾸는 힘이 된다.


메데인 국제시축제는 어떤 축제인가

한편 1991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창설된 메데인 국제시축제(Medellín International Poetry Festival)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 문학축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당시 메데인은 마약 카르텔과 무력 충돌, 정치적 폭력이 극심했던 도시였으며, 축제는 이러한 폭력과 공포에 맞서 **'시를 통한 평화와 인간 존엄의 회복'을 목표로 시작됐다.

축제는 매년 세계 각국의 시인들을 초청해 시 낭송회와 시민 대화, 강연, 학교 프로그램, 워크숍 등을 도시 전역에서 개최한다. 공연장뿐 아니라 공원, 광장, 학교, 도서관, 박물관 등 시민의 일상 공간을 무대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문학을 특정 계층의 문화가 아닌 시민 모두가 함께 향유하는 공공문화로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1년 창설 이후 지금까지 1,900명 이상의 시인들이 190여 개국을 대표해 참가했으며, 수천 회의 시 낭독과 문화행사를 통해 메데인을 세계적인 '시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또한 2011년에는 세계 각국의 시 축제를 연결하는 세계시운동(World Poetry Movement) 창설을 이끌며 국제 문화교류와 평화운동의 중심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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