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창밖에는 장맛비가 쉼 없이 내린다.
며칠째 이어지는 비는 산과 들을 적시고, 강물을 불리며, 사람들의 발걸음마저 무겁게 만든다. 해마다 찾아오는 장마이건만, 올해의 빗소리는 유난히 길고 깊게 들린다. 어쩌면 우리가 마주한 것은 계절의 장마만이 아니라 시대의 장마인지도 모른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구우(久雨)'다.
"久雨何須苦(구우하수고)
비 길다고 하나 무엇이 그리 괴로우랴.
晴時也自歎(청시야자탄)
맑은 날에도 홀로 탄식하곤 하는 것을."
불과 열네 글자 남짓한 이 마지막 구절은 2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의 우리 마음을 두드린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가난과 질병, 고독을 견뎌야 했다. 찾아오는 이는 드물었고, 의관조차 제대로 갖추기 어려운 생활이 이어졌다. 낡은 집 천장에서는 노린재가 떨어졌고, 병든 몸은 잠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긴 비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글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고, 백성을 위한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경제는 수치상 회복을 말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여전히 차갑다. 자영업자에게는 버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고, 청년들은 취업을 넘어 미래 그 자체를 걱정한다. 지방은 소멸을 우려하고, 농촌은 초고령 사회의 한복판에 서 있다. 아이 울음소리는 줄어들고, 노인의 한숨은 길어진다.
정치는 국민을 하나로 묶기보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대를 설득하는 언어보다 상대를 부정하는 언어가 앞서고, 협치보다 대결이 뉴스의 중심을 차지한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는 제도인데, 우리는 점점 다름을 적대의 이유로 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의 하늘도 맑지 않다.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곳곳에서 무력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강대국들은 협력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공급망, 첨단기술, 에너지와 자원을 둘러싼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기후위기는 폭우와 폭염, 산불과 가뭄이라는 얼굴로 인류를 시험하고 있으며,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새로운 불안도 낳고 있다.
우리는 풍요 속의 빈곤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질은 넘쳐나지만 신뢰는 부족하고, 정보는 홍수처럼 쏟아지지만 지혜는 메말라 간다.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정작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성찰은 짧아졌다.
그래서 다산의 시는 더욱 새롭게 읽힌다.
그는 긴 비보다 더 두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속에 쌓이는 절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늘은 언젠가 맑아지지만, 마음이 흐려지면 세상은 늘 장마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신뢰일지 모른다. 더 많은 비난이 아니라 더 큰 책임이며, 더 높은 담장이 아니라 더 넓은 다리다. 국가는 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지만, 공동체는 신뢰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국제사회 또한 힘만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으며, 대화와 절제, 그리고 상호 존중이 있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장맛비는 결국 그친다.
그러나 시대의 장마는 우리 모두가 함께 걷어내야 한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가 사람의 삶을 품으며, 국제사회가 대결보다 공존의 가치를 선택할 때 비로소 하늘도, 사람의 마음도 함께 개일 것이다.
창밖에는 아직도 빗소리가 이어진다.
그 소리는 단순히 비가 내리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인지를 잊지 말라는 시대의 경종이다.
다산은 긴 비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비를 견디며 사람의 길을 생각했다.
오늘, 그 길을 다시 묻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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