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박사, 총장, 원장, 석좌교수, 특임교수, 겸임교수, 명예교수…. 어느새 우리 사회는 직함의 시대를 넘어 직함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직함이 많아질수록 그 의미는 희미해지고, 권위가 남발될수록 신뢰는 약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직함이 아니라 직함에 걸맞은 책임과 품격이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교수와 박사가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가.
명함을 주고받는 일이 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교수, 박사, 총장, 원장, 석좌교수, 특임교수, 겸임교수, 명예교수….
어떤 명함에는 이름보다 직함이 더 크게 적혀 있고, 직함만 여러 줄 나열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 화려함에 압도되다가도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이 직함들은 모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원래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원을 뜻한다. 박사는 엄격한 학문적 과정을 거쳐 취득한 최고 학위다. 하나는 직위이고 하나는 학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교수와 박사의 의미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대학은 물론이고 평생교육원, 각종 협회, 문화예술단체, 민간 교육기관에 이르기까지 교수라는 명칭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물론 정당한 규정에 따라 임명된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사실상 기관 내부 편의에 따른 호칭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일반 시민들이 이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명함만 보면 모두가 교수이고 모두가 박사다.
결국 직함은 많아졌지만 직함의 의미는 오히려 희미해졌다. 경제에 인플레이션이 있다면 직함에도 인플레이션이 있다.
돈이 지나치게 많이 풀리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듯, 직함이 무분별하게 남발되면 직함이 가진 사회적 신뢰와 권위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직함이 사람의 본질을 가리는 경우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사람의 실력과 인품, 삶의 이력보다 명함에 적힌 직함을 먼저 보게 되었다. 상대방의 전문성을 검증하기보다 직함을 신뢰하고, 직함을 통해 사회적 위치를 판단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직함은 결코 인격의 증명서가 아니다. 교수라는 직함이 있다고 모두 훌륭한 교육자는 아니다. 박사라는 학위가 있다고 모두 훌륭한 학자는 아니다. 반대로 직함이 없다고 해서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사회적 기여가 적은 것도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평생을 현장에서 묵묵히 살아오며 존경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화려한 직함보다 삶의 무게로 평가받는다.
언론 역시 직함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대학교 교수'와 '평생교육원 교수', '학문적 박사'와 '명예박사'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직함의 출처와 성격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직함은 사회적 신뢰와 연결된다. 그 신뢰는 결코 명함 제작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전문성과 책임감, 그리고 윤리의식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높은 직함일수록 더 큰 책임이 따른다. 직함은 장식품이 아니라 무게다. 그 무게를 견디는 사람은 존경받지만, 그 무게를 이용하는 사람은 결국 신뢰를 잃게 된다.
우리가 진정 물어야 할 것은 "어떤 직함을 가졌는가"가 아니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이다.
명함은 사람을 소개할 수는 있어도 사람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결국 한 사람의 가치는 직함이 아니라 그가 걸어온 길이 말해준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벼슬보다 절개를 중시했고, 스승은 직함보다 학덕으로 존경받았다. 이름 앞에 무엇이 붙어 있는가보다 이름 뒤에 어떤 삶이 남아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직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직함의 숫자가 아니라 신뢰의 깊이다. 진정한 교수는 교수라는 명패가 아니라 가르침으로 기억되고, 진정한 박사는 학위증이 아니라 학문적 양심으로 존경받는다.
직함은 사람을 높여주는 사다리가 아니라 자신을 더욱 낮추고 성찰하게 만드는 책임의 무게여야 한다.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때 직함은 비로소 권위가 되고 품격이 된다.
사람의 가치는 명함 속 직함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과 걸어온 길이 증명한다. 그리고 결국 역사는 직함이 아니라 삶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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