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세상이 펼쳐진 이유,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삶은 때때로 이유를 묻는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수필가이자 시조시인 김문주 작가가 두 번째 시조집 <이유가 있겠지요>(월간문학 출판부)를 펴내며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따뜻한 성찰을 독자들에게 건낸다.
이번 시조집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자연 풍경과 일상 속 사소한 순간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하며,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위로와 사유의 시간을 선사하고 있다.
"풀 한 포기에도 이유가 있다"
김문주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한다.
김 작가는 '시인의 말'에서 보도블록 틈새에 뿌리를 내린 작은 풀을 바라보며 이번 시조집의 출발점을 설명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척박한 공간. 생존조차 쉽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풀 한 포기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한다.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자기 존재를 향한다.
"나 역시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바로 그 물음의 여정을 이번 시조집 전체에 담아냈다.
표제작 '이유가 있겠지요'가 던지는 질문
이번 시조집의 중심에는 표제작 '이유가 있겠지요'가 놓여 있다.
세상이
펼쳐진 이유
분명코 있겠지요
세상에
내가 온 이유
그 또한 있겠지요
그대는 알고 있나요, 어인 이유로 왔는지
불과 세 수로 이루어진 짧은 시조지만 그 안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오래된 질문이 담겨 있다.
작가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건넨다.
"왜 태어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어떤 의미를 남기고 떠날 것인가."
이 작품의 미덕은 거창한 철학을 늘어놓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담백하고 평범한 언어로 존재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특히 마지막 구절인 "그대는 알고 있나요"는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장치다.
작가가 던진 질문은 곧 독자의 질문이 된다.
오늘날 성과와 경쟁, 효율과 속도가 삶의 기준이 된 시대에 이 작품은 존재 자체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 왜 살아가고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유가 있겠지요'는 단순한 자연 서정시가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철학적 성찰의 메시지로 읽힌다.
계절을 노래하며 삶을 말하다
시조집은 모두 8부로 구성됐다.
1장 '봄에'는 기다림과 희망, 생명의 시작을 노래한다. '기다리는 마음'에서는 입춘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는 설렘을 담았고, '봄날에 매창을 그리워하다'에서는 조선시대 여류 시인 매창을 소환해 애절한 연모의 정서를 펼쳐낸다.
2장 '여름에'에서는 생명의 역동성과 뜨거운 열정을 담아냈다. '여름을 만나다'는 갑작스레 찾아온 여름을 연인처럼 의인화해 유쾌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3장 '가을에'는 성숙과 비움의 시간이다. '입추'에서는 무더위를 벗어난 자유를 바람의 언어로 형상화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노래한다.
4장 '겨울에'는 고요와 기다림, 사랑의 온기를 담아낸다. '겨울비'에서는 우산 아래 팔짱을 낀 젊은 연인의 모습을 통해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살아 있는 사랑의 온도를 그려낸다.
삶의 아픔마저 시가 되다
이번 시조집의 백미는 후반부에 수록된 인간 존재와 사회를 향한 성찰의 작품들이다. 특히 '막다른 길'은 병마와 싸우던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던 순간을 압축된 언어로 표현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
병마에
쇠잔해진
짚풀 같은 어머니 손
가슴을
졸여가며
꼭 잡고 걸었건만
끝끝내 놓쳐버리고 주저앉던 그 순간
김문주 작가의 시조는 자연과 감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후반부에 수록된 '가짜 뉴스', '독버섯', '윗물이 맑은 세상' 등의 작품은 현대 사회의 병폐와 윤리적 문제를 시조 형식으로 성찰한다.
특히 '막다른 길'은 병마와 싸우던 어머니를 떠나보낸 순간의 절절한 상실감을 담아내며 독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짧은 형식 안에 압축된 언어는 오히려 더 큰 감동을 만들어낸다.
김문주 작가의 작품 세계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활 속 작은 풍경을 노래하면서도 결국 인간 존재와 삶의 본질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수필가에서 시조시인으로 이어진 문학의 길
김문주 작가는 1998년 <수필과 비평>, 2004년 <에세이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문단에 나왔다.
이후 오랜 시간 수필 창작을 이어오며 인간과 삶에 대한 따뜻한 통찰을 보여주었다.
2023년에는 <월간문학>을 통해 시조로 등단하며 새로운 문학적 지평을 열었다.
수필집 <0번 블루스>와 첫 시조집 <시냇물의 기도>에 이어 이번 <이유가 있겠지요>는 두 번째 시조집이다.
또한 2024년 서울교통공사 스크린도어 시조 공모 당선으로 대중과 더욱 가까이 호흡하는 문학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여성시조문학회, 에세이문학작가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따뜻한 자아성찰의 문학"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는 김문주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자아성찰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문학"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김 작가의 작품이 불교의 유아독존 사상과 실존주의 철학의 결을 함께 품고 있다고 분석한다.
세상은 나와 분리된 대상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해되고 해석되는 존재이며,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세상을 이해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문주 작가의 시조는 삶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늘 긍정과 희망의 방향을 향한다.
상처를 노래하면서도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인간을 잊지 않는다.
그 따뜻한 시선이 이번 시조집 전편을 관통하고 있다.
시조는 가장 짧은 형식의 시이지만 때로는 가장 긴 여운을 남긴다.
김문주 작가의 <이유가 있겠지요>는 화려한 언어보다 담백한 질문으로 독자 곁에 다가온다.
길가의 풀 한 포기, 계절의 변화, 창밖의 바람, 어머니의 손, 그리고 삶의 수많은 인연들.
김문주 작가는 그 평범한 풍경들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고, 그 이유를 향한 여정을 시조의 운율에 실어 독자들에게 건넨다.
정답을 알려주지 않기에 더 오래 생각하게 하고, 소리 높여 외치지 않기에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어쩌면 이번 시조집이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인지도 모른다.
삶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그리고 아직 찾지 못한 내일의 꿈에도.
<이유가 있겠지요>는 그 이유를 찾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조용한 위로이자 따뜻한 동행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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