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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컬럼] 최창일 시인, '울었다, 스노보드 수묵화 앞에서'

최가온의 비행을 읽다

설원 위를 가르는 한 젊은 스노보드 선수의 비행은 단순한 스포츠 장면을 넘어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최창일 시인은 최가온 선수의 점프와 착지를 '수묵화'에 비유하며, 몸으로 완성된 예술의 순간을 포착한다. 이 글은 승패를 넘어선 아름다움, 하늘로 오르는 용기와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품격을 성찰하는 사유의 기록이다. 눈 내리는 설원을 바라보며 시인은 묻는다. 인생이란 결국 ‘착지의 예술’이 아니겠는가. 젊은 비상의 장면 앞에서 울음을 삼키지 못한 한 노 시인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겨울과 봄을 동시에 환기한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설원 위로 눈이 내렸다. 흰 입자들이 겹겹이 포개지며 세상을 다시 그렸다. 그 풍경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었다. 거대한 화선지였다. 수묵이 번지듯 눈발이 흩날리고, 그 위로 한 소녀가 몸을 띄웠다. 스노보드 선수 최가온. 그날 그녀는 기술이 아니라 한 편의 시를 쓰고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오후였다. 점프의 순간, 공기가 갈라졌다. 몸은 작아졌다가 다시 커지듯 떠올랐다. 몇 초 남짓한 비행이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겨울이 포개져 있었다. 얼어붙고, 녹아내리고, 다시 다져온 시간의 결. 화면 앞에 선 나는 그녀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었다.

스노보드는 그날 언어였다. 몸으로 쓰는 문장. 점프와 회전, 그리고 착지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 리듬과 닮아 있었다. 보드는 펜이었고, 눈은 백지였다. 그녀는 쓰는 대신 날았고, 말하는 대신 회전했다. 여백은 회전의 끝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마다 생겨났다.

"나는 눈이 되어 내리리." 오래전 읽은 시구가 떠올랐다. 최가온의 비행은 그 문장의 현대적 구현 같았다. 인간이 자기 한계를 넘어 빛이 되고, 눈이 되는 찰나. 하늘과 땅의 경계를 끌어안은 짧은 체공 속에서, 한 젊은 존재는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고 있었다.

착지의 순간, 세상은 고요해졌다. 환호도, 바람도, 숨소리조차 멈춘 듯했다. 그녀가 눈 위에 내려앉았을 때, 그것은 서사시의 마지막 행처럼 느껴졌다. 모든 호흡을 다 쏟아낸 뒤 찾아오는 침묵의 절정. 그리고 나는 울었다.

그것은 단순한 감동의 눈물이 아니었다. 인간이 아름다움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울음이었다. 그녀가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다. 한 존재가 끝까지 자신을 믿고, 자신의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착지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정점이 아니라, 스스로의 그림자를 끌어안는 행위처럼 보였다.

문득 생각했다. 인생이란 어쩌면 착지의 예술인지도 모른다고. 누구나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지만, 결국은 땅으로 돌아온다. 그때의 자세, 그 고요한 수용의 순간이 한 인간의 품격을 말해준다. 최가온은 완벽히 착지했다. '승리'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충분한 아름다움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젊은 날을 떠올렸다. 시를 붙잡고 씨름하던 밤들, 언어가 나를 떠난 것 같던 긴 겨울. 그 겨울을 지나 다시 문장 앞에 서던 시간들. 그녀의 비행은 잊고 있던 나의 계절을 다시 불러냈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흰 입자들이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세상을 덮었다. 추락과 회전, 고요와 착지. 그 자리에 우리 모두의 겨울이 겹쳐져 있는 듯했다.

그래서 울었다. 승리의 이름이 없어도 좋았다. 한 사람의 비행이 끝까지 이어져 이 자리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젊은 소녀의 몸짓은 세대를 가로지르는 인간의 언어였다. 하늘로 오르는 용기와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지혜, 그리고 그 사이의 떨림.

나는 믿는다. 진정한 시는 종이 위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눈 속에서, 몸속에서,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노력 속에서 피어난다. 그날 설원 위에서, 나는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코끝으로 울었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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