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이슈작가 작품선] 베트남 아동문학의 대표 시인 레 홍 티엔(Lê Hồng Thiện),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노래하다

  • 등록 2026.08.08 04: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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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희어질수록 동심은 깊어진다"…'어린이를 위한 동화'에서 만나는 순수와 발견의 시학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해질 때가 있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아동문학 시인 레 홍 티엔(Lê Hồng Thiện)은 바로 그 '동심의 힘'을 평생 시의 중심에 놓아온 작가다.

1943년 베트남 흥옌성에서 태어난 그는 시와 산문, 문학이론·비평을 아우르며 24권의 저서를 펴냈고, 이 가운데 어린이를 위한 시집만 14권에 이른다.

그의 작품 가운데 거의 100편이 노래로 만들어졌으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시가 수록됐다.

이번에 소개하는 세 편의 작품은 그의 대표적인 아동시집 <어린이를 위한 동화>에서 골라낸 작품들로, 가족의 사랑과 배움의 기쁨, 어린이의 호기심을 맑고 익살스러운 언어로 담아낸다.

평생 아이들의 옹알이를 사랑한 시인

레 홍 티엔 시인의 문학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열쇠는 그가 직접 남긴 다음과 같은 시구에 있다.

"평생 아이들의 옹알이 소리를 사랑하며
머리가 희어질수록 천진함은 더욱 깊어지고
내 영혼은 연 한 마리를 하늘로 띄운다.
줄을 팽팽히 잡고, 바람을 맞으며 목동을 따라 달린다."

이 네 줄은 한 시인의 문학적 자화상에 가깝다.

1943년 베트남 흥옌성에서 태어난 레 홍 티엔은 베트남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베트남작가협회 흥옌성 지회 부회장(2020~2025)을 지냈으며, 흥옌성 문학예술협회 시분과 부위원장(2000~2010)을 역임했다.

현재는 2026~2030년 임기의 베트남작가협회 흥옌성 지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흥옌성 문학예술협회 문학이론·비평분과 위원으로도 문학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시와 산문, 문학이론 및 문학평론을 포함해 24권의 작품을 출간했으며, 이 가운데 어린이를 위한 시집이 14권에 달한다.

현재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세 권의 작품까지 더하면 그의 문학적 성취와 창작의 폭은 더욱 넓어진다.

베트남작가협회와 베트남문학예술연합회가 수여하는 여러 문학상을 비롯해 베트남 문화부 휘장, 호찌민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위원회 휘장 등도 받았다.

무엇보다 그의 시가 지닌 대중성과 교육적 가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됐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지금까지 그의 시 가운데 거의 100편이 노래로 만들어졌다는 점 역시 그의 시가 문학적 언어를 넘어 대중의 삶 속으로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발견하다

레 홍 티엔의 아동시는 단순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쓴 시가 아니다.

그의 시에서 어린이는 세상을 처음 발견하는 존재이며, 시인은 그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어렵고 추상적인 관념보다 흙길과 나뭇잎, 새와 나비, 달과 바나나, 거울 속의 얼굴처럼 어린이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소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소박한 소재 속에는 가족의 사랑과 교육, 세대 간 기억, 전쟁의 역사,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함께 담겨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학교 가는 딸', '저마다의 달', '거울 보는 내 아이'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첫 번째 작품 - '학교 가는 딸'… 배움의 첫걸음에 담긴 아버지의 사랑

첫 번째 작품 '학교 가는 딸'은 첫딸 레홍응우옌에게 바친 시다.

CON ĐI HỌC
(Tặng con gái đầu lòng Lê Hồng Nguyên)

Đi trên đường đất đỏ
Xanh xanh hai bờ cây
Con ơi đừng mê mải
Lá vẫy và chim bay
Con chim non tập hót
Con bướm nhỏ tập bay
Con gái tôi tập viết
Bắt đầu sáng thu nay.


- 한국어 번역 : 레땅환(LE DANG HOAN) 한국어 번역가)

학교 가는 딸
(
첫딸​ 레 홍응 우옌에게)

붉은 흙길을 걸어가네
양쪽에는 푸른 나무들
딸이야, 한눈팔지 말아라
손짓하는 잎새와 날아가는 새들에
어린 새는 노래를 배우고
작은 나비는 날기를 배우네
내 딸은 글쓰기를 배우기
이 가을 아침부터 시작하네!


시의 첫 장면은 매우 평범하다.

아이와 아버지가 학교로 향한다. 붉은 흙길 양옆에는 푸른 나무가 있고, 아이의 눈길을 붙잡는 것은 흔들리는 나뭇잎과 날아가는 새다.

그러나 이 평범한 풍경은 곧 ‘배움’이라는 삶의 은유로 확장된다. 새는 노래를 배우고, 나비는 날기를 배운다. 그리고 아이는 글쓰기를 배운다.

자연의 생명들이 저마다 자신의 방식으로 성장하듯, 어린이 역시 배움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간다는 메시지다.

특히 "이 가을 아침부터"라는 시간적 배경은 한 아이의 인생에서 새로운 출발점을 의미한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장소가 아니다.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꿈을 발견하며, 한 사람의 삶을 시작하는 곳이다.

레 홍 티엔은 그 첫걸음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꾸밈없이 담아낸다. 아이에게는 학교에 가는 아침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아이의 인생이 시작되는 아침이다.

두 번째 작품 - '저마다의 달'… 하나의 달, 다섯 개의 기억

두 번째 작품 '저마다의 달'은 초승달을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을 담았다.

TRĂNG CỦA MỖI NGƯỜI
(Ngắm vầng trăng đầu tháng)

Mẹ bảo trăng như lưỡi liềm
Ông rằng: trăng tựa con thuyền cong mui
Bà nhìn: như hạt cau phơi
Cháu cười: quả chuối vàng tươi ngoài vườn
Bố nhớ khi vượt Trường Sơn
Trăng như cánh võng chập chờn trong mây.


- 한국어 번역 : 레땅환(LE DANG HOAN) 한국어 번역가)

저마다의 달
(초승달을 ​보며)

어머니는 달이 낫처럼 생겼다고 말하고
할아버지는 뱃머리 굽은 작은 배 같다고
할머니는 말린 빈랑 열매 같다고 보시고
손자는 웃으면서 정원에서 노랗게 익은 바나나 같다고 하고
아버지는 쯔엉선을 넘던 시절을 떠올리며
달은 구름 사이로 아른거리는 해먹 같았다고 기억한다.


이 작품의 매력은 하나의 달이 가족 구성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는 데 있다.

어머니에게 달은 낫이고, 할아버지에게는 작은 배이며, 할머니에게는 말린 빈랑 열매다. 아이에게는 정원에서 익어가는 바나나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달은 쯔엉선 산맥을 넘던 시절의 해먹이다. 같은 달을 보고 있지만 누구도 같은 달을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각자의 삶과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의 기억 속 '쯔엉선'은 베트남 현대사의 아픈 기억과 연결된다. 쯔엉선 산맥은 베트남 전쟁 당시 북부에서 남부로 이어지는 중요한 이동 경로였으며, 아버지에게 초승달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기억을 불러오는 역사적 공간이다.

그러나 시인은 역사적 비극을 무겁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구름 사이로 아른거리는 해먹"이라는 이미지 하나로 기억을 환기한다.

이 작품은 결국 달에 관한 시이면서 가족의 기억에 관한 시다. 그리고 한 가족 안에서도 각자의 삶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세 번째 작품 - '거울 보는 내 아이'… 거울 속 친구를 발견한 아이의 순수한 질문

세 번째 작품은 아들 홍티엠에게 쓴 '거울 보는 내 아이'다.

BÉ SOI GƯƠNG
(Viết cho con trai Hồng Thiêm)

Lần đầu cầm gương
Bé cười bạn cười
Yêu sao yêu thế!
Trong gương có người
Bé giơ tay bắt
Bạn cũng giơ theo
Đã không chạy mất
Lại cùng bé reo
Bé lật mặt sau
Bỗng bạn biến mất
Cái gương mỏng thế
Giấu bạn vào đâu?


- 한국어 번역 : 레땅환(LE DANG HOAN) 한국어 번역가)

거울 보는 내 아이
(아들​ 홍 티엠에게)

처음 거울을 들었네
아기가 웃자 친구도 웃네
정말 사랑스럽구나!
거울 속에 누군가 있네
아기가 손을 내미니
친구도 따라 손을 드네
도망가지도 않고
아기와 함께 즐겁게 소리치네
아기가 거울을 뒤집자
갑자기 친구가 사라졌네
이렇게 얇은 거울이
친구를 어디에 숨겼을까?


아이가 처음 거울을 들여다본다. 아이에게 거울 속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다. '친구'다.

내가 웃으면 친구도 웃고, 내가 손을 내밀면 친구도 손을 내민다. 그러다 아이가 거울을 뒤집는 순간 친구가 사라진다.

바로 이 마지막 질문이 작품의 백미다.

"이렇게 얇은 거울이 / 친구를 어디에 숨겼을까?"

어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거울의 원리지만 아이에게는 하나의 수수께끼다.

레홍티엔은 아이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궁금해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아동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가 세상을 궁금해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문과 번역 사이, 한국 독자에게 건너온 베트남의 동심

이번 작품선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지점은 베트남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을 함께 읽는 즐거움이다.

원문의 리듬과 이미지, 베트남의 생활문화가 한국어 번역을 통해 새로운 언어의 호흡으로 되살아난다.

특히 '저마다의 달'에 등장하는 '빈랑 열매'와 '쯔엉선'처럼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더욱 깊이 읽을 수 있는 표현도 한국어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이번 한국어 번역은 레땅환(LE DANG HOAN)​ 한국어 번역가가 맡았다. 베트남 문학과 한국 문학을 잇는 번역의 역할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독자가 작품 속 정서와 역사, 생활의 풍경까지 함께 이해하도록 돕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번 작품선은 레홍티엔 시인의 작품을 소개하는 동시에, 베트남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이 만나는 문학적 교류의 장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동심의 시학'

'학교 가는 딸'과 '저마다의 달', '거울 보는 내 아이'는 서로 다른 작품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의 공통된 세계가 있다. 바로 동심이다.

학교에 가는 아이의 눈, 초승달을 바라보는 가족의 눈, 처음 거울을 만난 아기의 눈.

그 눈을 통해 세상은 새롭게 태어난다. 레홍티엔 시인의 아동시는 그래서 교훈적이기보다 발견적이다. 어린이에게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보다 "세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다"고 보여준다.

그의 시가 익살스럽고 친근하면서도 오래 기억되는 이유다. 그 바탕에는 자녀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다.

그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 그의 시는 무엇보다 자신이 기다리고 보살피며 희망을 품었던 자녀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모든 어린이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특정한 어린이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곧 세상을 다시 사랑하는 마음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레홍티엔은 나이가 들어도 동심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머리가 희어질수록 더 깊은 동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베트남과 한국, 동심으로 만나는 문학

레 홍 티엔의 작품은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적 기억을 담고 있으면서도 한국 독자에게 낯설지 않다.

아이의 첫 등굣길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한국과 베트남이 다르지 않다. 가족이 함께 달을 바라보며 저마다 다른 추억을 떠올리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처음 거울을 본 아이가 그 안의 또 다른 아이를 친구로 생각하는 장면 역시 국경을 초월한다.

문학은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차이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공통된 마음을 발견하게 한다. 레홍티엔의 아동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 독자와 만난다.

베트남의 붉은 흙길과 쯔엉선의 기억, 베트남 가족의 일상과 문화가 작품 속에 녹아 있지만, 그 중심에는 자녀를 사랑하고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보편적인 마음이 있다.

머리가 희어질수록 더 어린 마음으로

레 홍 티엔 시인의 시에는 연이 자주 등장한다. 연은 아이들의 놀이이지만 동시에 시인의 영혼이다.

바람을 만나야 하늘로 올라가고, 누군가 줄을 잡아주어야 날아갈 수 있다. 그에게 동심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현재의 마음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어린이를 위한 시이면서 동시에 어른들에게 동심을 돌려주는 시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아이는 모든 것을 궁금해하지만 어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레 홍 티엔의 시는 그 어른에게 다시 묻는다.

달은 정말 하나의 모습뿐인가. 거울 속 아이는 정말 나 자신뿐인가. 학교로 향하는 한 아이의 발걸음은 정말 평범한 아침일 뿐인가.

아이는 세상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바라본다. 그리고 시인은 그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머리가 희어질수록, 동심은 더욱 깊어진다."

그 한마디가 레홍티엔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선언이다.

아이들의 옹알이를 평생 사랑한 시인. 그의 시 속에서는 오늘도 붉은 흙길 위로 아이가 학교에 가고, 초승달은 가족마다 다른 모습으로 떠오르며, 작은 아이는 거울 속 친구를 찾아 웃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 위로, 오래전 어린 시절의 연 한 마리가 다시 바람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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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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