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예술가 언덕', 세계 문인들의 시를 돌에 새긴다

  • 등록 2026.07.15 1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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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정원' 조성… 한국을 비롯한 세계 시인들의 시구, 영원한 문화유산으로
한국·베트남 잇는 시의 다리, 국제문학교류 새 이정표 기대


(서울·하노이=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베트남 바비(Ba Vì)-떤비엔(Tản Viên) 산자락의 예술가언덕(Đồi Nghệ Sĩ)'이 세계 문인들의 대표 시구를 자연석에 새기는 국제 프로젝트 '문학의 정원(Vườn Văn)' 조성에 나서 국제 문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자연과 시, 조각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 프로젝트는 국경과 언어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돌 위에 새기는 새로운 문화운동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문인들도 참여를 제안받아 한·베 국제문학교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베트남에서 가장 신성한 산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바비-떤비엔 산맥에는 해발 88m의 작은 언덕이 있다. 이곳은 세계 각국의 시인과 소설가, 화가, 음악가들이 머물며 창작과 교류를 이어가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오늘날 국제 예술인들의 새로운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예술가들은 머물고, 사색하고, 창작하며 생애 가장 소중한 작품들을 남긴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더 이상 추억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그 흔적은 산기슭의 바위에 새겨진 시가 되어 시간을 넘어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된다.

이 같은 구상은 국제 문인들과 오랫동안 교류해 온 예술가 언덕 설립자 방아이터(Bàng Ái Thơ) 시인의 따뜻한 문학적 신념에서 비롯됐다. 그는 자연과 문학이 공존하는 야외 문학관을 만들기 위해 '문학의 정원(Vườn Vă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국제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놓인 자연석들은 더 이상 침묵하는 돌이 아니다. 그 위에는 세계 각국의 시인과 작가들이 남긴 가장 아름답고 함축적인 시구가 새겨져,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전하는 살아 있는 문학비가 된다.


방아이터 시인은 "국제 문인들과의 오랜 교류 속에서 '문학의 정원'을 구상하게 됐다"며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길 양편의 자연석마다 세계 문인들의 대표 시구를 새겨 자연과 문학이 하나 되는 야외 문학관을 조성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돌은 오랜 세월을 견디지만, 그 위에 황금 같은 시가 새겨지는 순간 영원한 영혼을 갖게 된다"며 "언어는 달라도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잇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프로젝트의 의미를 설명했다.

문학의 정원이 완성되면 국제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은 하나의 '세계 시(詩)의 지도'가 된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헝가리, 태국, 호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이탈리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세계 여러 나라 문인들의 시가 한자리에 모여 사랑과 평화, 인간애를 노래하는 국제 문학공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한 줄의 시가 돌에 새겨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간직할 문화유산이 된다. '예술가 언덕'의 '문학의 정원'은 자연과 예술, 그리고 세계 문학이 한자리에 만나는 새로운 국제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시인 장건섭, 대표 시구 초청

시를 돌에 새기는 작업은 시인이자 석조예술가인 막카이뚜언(Mạc Khải Tuân)이 맡는다. 그는 거친 자연석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며, 조각의 힘과 시의 감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펼쳐오고 있다. 그의 정교한 손끝에서 글자는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형상과 음악, 숲의 숨결을 품은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대한민국 시인 장건섭도 공식 초청을 받았다.

30여 년 동안 베트남을 수없이 오가며 문학교류와 문화교류에 힘써 온 장 시인은 한국과 베트남의 우정과 평화를 상징하는 대표 시구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장 시인이 제안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국경은 지도를 나누어도
사랑은 하나의 세상을 잇는다
베트남의 바람이 내 시를 품어 오면
한국의 달빛도 그대를 비춘다

Dẫu biên giới chia những tấm bản đồ,
Tình yêu vẫn nối liền một thế giới.
Gió Việt Nam mang theo vần thơ tôi,
Ánh trăng Hàn Quốc cũng soi sáng bạn.


이 작품은 국경과 언어를 넘어 문학으로 이어지는 두 나라의 우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내 예술가 언덕이 추구하는 철학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에도 세계적인 '돌의 문학'이 있다

문학을 돌에 새겨 영원한 문화유산으로 남기려는 노력은 한국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충남 보령시 미산면 봉성리문화예술마을 붱새바위 한국문학헌장비공원이다.

이곳에는 '한·베트남국제문학교류비'를 비롯해 시, 시조, 소설, 아동문학 등 각 장르의 문학헌장비와 국내 대표 문인들의 작품을 새긴 시비와 문학비 350여 기가 조성되어 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규모의 야외 문학공원이자 살아 있는 문학박물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은 산촌마을은 시인이자 석공예 예술가인 김유제 시인이 30여 년 동안 직접 돌을 다듬고 숲을 가꾸며 일군 문화예술공동체이다.

한 편의 시를 돌에 새기고, 한 기의 문학비를 세우며, 산촌 전체를 문학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그의 작업은 한국 문학사에서도 독보적인 문화예술 실천으로 평가받는다.

김유제 시인은 현재 봉성리문화예술마을을 중심으로 국제문학엑스포 개최를 준비하고 있으며, 오늘도 차가운 돌 위에 따뜻한 문학의 숨결을 새기고 있다.


돌 위에 새겨지는 문학, 한·베 문화교류의 새로운 미래

베트남 예술가 언덕의 '문학의 정원'과 한국 보령 봉성리문화예술마을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시작됐지만, 문학을 자연 속에 새겨 후세에 전한다는 철학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한곳은 베트남 바위산에 세계 시인들의 시를 새기고, 다른 한곳은 한국의 산촌에서 수백 기의 시비와 문학비를 세워 문학의 향기를 이어가고 있다.


문학은 책장을 넘어 숲이 되고, 바위가 되고, 길이 된다. 차가운 돌 위에 새겨진 한 줄의 시는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가장 따뜻한 언어가 된다.

베트남 예술가 언덕과 충남 보령 봉성리문화예술마을이 앞으로 한·베 국제문학교류의 거점으로 긴밀히 협력한다면, 돌에 새겨진 시는 두 나라를 잇는 또 하나의 '문학의 다리'가 되어 세계 문학사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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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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