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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 홍명희 시인의 '투탕카멘을 위한 안케시나몬의 영가'… 천 개의 모래언덕을 넘어 되살아난 사랑의 영혼

사막과 황금, 죽음과 영원을 가로지르는 애도의 서사시
"수천 년의 모래바람 속에서도 사랑은 끝내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고대 이집트의 황금 왕 투탕카멘(Tutankhamun)과 그의 왕비 안케세나멘(Ankhesenamen, 안케시나몬)을 소재로 한 홍명희 시인의 '투탕카멘을 위한 안케시나몬의 영가'는 단순한 역사적 상상력을 넘어,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영원성을 노래하는 장엄한 서정시다.

이 시는 사랑의 기억이 시간을 넘어 어떻게 인간 영혼 속에 살아남는지를 보여준다.

사막의 모래와 황금빛 무덤, 향유와 수레국화, 나일강과 별빛 같은 상징들이 겹겹이 쌓이며 독자를 고대 이집트의 신비로운 영혼 세계로 이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인상적인 지점은 '죽음'을 끝이 아닌 기다림과 재회의 시간으로 바라본다는 데 있다.

시 속 화자인 안케시나몬은 죽은 왕 투탕카멘을 찾아 끝없는 사막을 건너간다.


천 개의 모래언덕을 넘고 넘어
- 투탕카멘을 위한 안케시나몬의 영가

- 홍명희 시인

천 개의 산을 넘고 넘어
천 개의 모래언덕을 넘고 넘어
수천 개의 모래 골짜기를 지나고 지나
수천 길 깊이 잠들어 있는 당신의 숨소리를 찾아갑니다
수천 년 세월 속 수만 겹 모래층 그 아래
고요히 잠든 당신의 넋을 찾아 헤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왕 나의 형제여
오색 빛 향기 머금은 무지갯빛 향유를
금빛 찬란한 당신의 이마에 두 뺨에 목덜미에 팔에 가슴에
휘감듯 미끌어지듯 매만지며 바릅니다
당신을 향한 연모의 정이 당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살결마다
나의 손끝에서 백합처럼 진하고 순결한 향으로 피어오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왕 나의 임금이여
검은 눈동자를 감싼 짙푸른 눈화장이 나의 온몸을 영혼을
흰 비둘기처럼 고요한 그대 숨결 속에 가둡니다
깃털처럼 가벼운 나의 영혼이 당신 발 앞에 무릎 꿇고
황금으로 감싼 당신 발에 입 맞춥니다
수천 년 세월 속 수만 겹 모래 속에서
나를 부르는 영혼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끊어질 듯 들려오는 당신의 목소리가
수천수만의 모래 알갱이에 묻어 귓속에 맴돌고
수천수만의 화살이 되어 심장을 파고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왕 나의 임금이여
당신이 누운 황금 관 당신의 심장 위에 놓인 한 다발의 수레국화는
당신과 함께 나눈 섬세한 행복에 바치는 내 심장의 은은한 노래
화살 깃을 닮은 색색의 꽃잎이
우리가 마주 잡은 손바닥 안에서
영겁을 향해 수레바퀴처럼 둥글게 원을 그리며 굴러갑니다
수천수만 길 모래 산을 헤집어 검게 굳어버린 당신을 껴안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왕 나의 투탕카멘이여,
수천 년 당신을 찾아 헤맨 나의 마음이 별빛이 되어
사막의 모래알처럼 당신의 깊고 검은 눈동자 위로 쏟아져 내립니다
수천 년 모래바람을 거슬러 살아나는 당신의 금빛 살결 위로
초록빛 나일강이 에메랄드처럼 흘러갑니다




■ 감상과 해설 / 장건섭 시인(본지 편집국장)

이 시에서 반복되는 "수천 년", "수만 겹", "천 개의 모래언덕" 같은 표현은 단순한 시간의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견뎌야 했던 기다림의 무게이며, 죽음조차 넘어서는 영혼의 거리다.

홍명희 시인은 사막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원의 시간성을 품은 공간으로 형상화한다. 모래는 시간을 덮고 지우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기억을 보존하는 거대한 무덤이다. 그 속에서 안케시나몬은 끝내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을 찾아간다.

특히 "수천수만의 화살이 되어 심장을 파고듭니다"라는 대목은 이 시의 정서를 압축한다.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기억인 동시에 가장 깊은 상처이기도 하다. 그리움은 오래될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한 통증으로 되살아난다.

시 전반에 흐르는 황금빛 이미지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화려함을 떠올리게 하지만, 시인은 단순한 역사적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 황금은 죽음 이후에도 부패하지 않는 영원의 상징이며, 사랑의 기억이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은유로 읽힌다.

또한 작품 속 수레국화는 실제로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꽃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은 이를 단순한 유물로 바라보지 않고, "당신과 함께 나눈 섬세한 행복에 바치는 내 심장의 은은한 노래"로 재해석한다. 한 다발의 꽃은 곧 사랑의 기억이며, 죽은 이를 향한 마지막 헌사인 셈이다.

무엇보다 이 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여성 화자의 깊고도 장엄한 목소리다. 안케시나몬은 단순히 죽은 왕을 애도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시간을 거슬러 사랑의 기억을 복원하는 영혼의 순례자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애가(哀歌)를 넘어선다. 오히려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는 사랑의 부활 서사에 가깝다.

마지막 연에서 "초록빛 나일강이 에메랄드처럼 흘러갑니다"라는 구절은 특히 아름답다. 끝없이 메마른 사막과 죽음의 공간 속에서도 나일강은 여전히 흐른다. 그 강물은 생명의 귀환이며, 사랑의 영원성에 대한 시인의 믿음처럼 읽힌다.

홍명희 시인은 감각적인 이미지와 서사적 상상력을 결합해 신화와 역사, 사랑과 죽음, 시간과 영원을 하나의 시적 공간 안에 펼쳐 보인다. 특히 여성적 섬세함과 장중한 리듬감이 어우러진 그의 시세계는 독특한 울림을 지닌다.


■ 홍명희 시인

충북 괴산 출생의 홍명희 시인은 시집 <나무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와 <사다리 위 2차 방정식> 등을 펴내며 존재와 사랑, 기억과 시간의 심연을 탐색해온 시인이다.

2016년 <심상>을 통해 등단한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 (사)국제PEN한국본부 이사와 (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문학시대> 편집위원, 단비문학 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한국문인협회 낭송분과위원과 대전시낭송협회 이사, 대덕시낭송협회 회장, 국제시사랑협회 이사 등을 맡아 시낭송과 문학 보급 활동에도 힘쓰고 있으며, 문학을 단순히 읽는 장르에 머물지 않고 '소리와 숨결로 전달되는 예술'로 확장해오고 있다.

특히 대덕구장애인복지관 시낭송 및 시창작 강사, 대덕구 시낭송·시창작 배달강사, 여성가족원 시낭송 및 시창작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치유의 가능성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콘텐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문학과 콘텐츠 연구를 병행하며, 시와 예술, 낭송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작업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시 '투탕카멘을 위한 안케시나몬의 영가'는 단순한 역사적 상상력의 재현을 넘어, 시간을 초월해 끝내 한 사람을 잊지 못하는 인간 영혼의 가장 오래된 사랑 노래처럼 읽힌다.

시 속 안케시나몬은 죽은 왕 투탕카멘을 찾아 수천 년의 모래언덕을 넘고 또 넘는다. 그 여정은 결국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순례이기도 하다.

"수천 년 당신을 찾아 헤맨 나의 마음이 별빛이 되어"라는 구절은 사랑이 육체의 시간을 넘어 기억과 영혼의 차원으로 이동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홍명희 시인은 이 작품에서 고대 이집트라는 장엄한 시간을 빌려왔지만, 결국 말하고 있는 것은 오늘 우리 인간의 슬픔과 그리움이다. 사랑은 끝났어도 사랑했던 기억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죽음조차 한 사람의 이름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이 시는 한 편의 연가이면서도 동시에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과 영원성에 대한 시적 묵상으로 읽힌다.

수천 년의 모래바람이 지나도 사랑은 끝내 한 사람의 이름을 지우지 못한다는 것을, 홍명희 시인의 시는 사막 위 별빛처럼 오래 흔들리며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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