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Tank Day)' 프로모션 논란이 전국적인 불매운동으로 번지며 한국 사회의 역사 감수성과 민주주의 기억을 둘러싼 거대한 사회적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마케팅 실수 차원을 넘어, 5·18 민주화운동과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표현이 사용됐다는 비판 속에서 기업 윤리와 역사 인식, 소비자의 시민의식 문제까지 포괄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논란은 지난 18일 스타벅스코리아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진행한 텀블러 프로모션에서 시작됐다.
스타벅스는 홍보물에 '탱크데이'라는 표현과 함께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계엄군 탱크의 광주 진입과 군사정권 시절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은폐 발언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스타벅스는 해당 행사를 중단하고 두 차례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담당 임원을 전격 해임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피해자 단체들은 "실무자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다"며 진정성 없는 대응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스타벅스 앞에서는 박종철기념사업회와 5·18 관련 단체, 국가폭력 피해자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 회장의 경영 퇴진까지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 전 묵념을 진행한 뒤 "탱크는 단순한 군사 장비가 아니라 국가폭력과 계엄, 시민 학살의 기억"이라며 "민주주의 희생을 상업적 이벤트로 소비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종철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스타벅스의 해명 방식 역시 문제 삼았다.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는 "젊은 실무자의 우발적 사고처럼 설명하는 것은 과거 군사정권의 책임 회피 논리와 닮아 있다"고 주장했고, 고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도 "정용진 회장 본인이 깊이 반성하는 것이 가장 큰 대책"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이른바 '탈벅(스타벅스 탈퇴·불매)' 움직임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광고가 아니라 민주주의 기억에 대한 폭력", "역사 감수성이 없는 기업", "브랜드의 태도까지 소비하는 시대"라는 비판이 이어졌고, 일부 소비자들은 스타벅스를 넘어 신세계 계열사 전반에 대한 불매운동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정치권으로도 파장은 번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비인간적 행태"라고 비판하며 "도덕적·행정적·법적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일부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SNS에 "스타벅스 가야지" 등의 게시물을 올려 논란을 희화화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민의힘 충북도당은 이후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했지만, 5·18 유족회는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조롱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한국 사회의 '기억정치(memory politics)' 문제와 연결해 분석하고 있다.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기업 마케팅 역시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책임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5·18기념재단은 "대기업 마케팅 과정에서 묵과할 수 없는 역사 왜곡과 희화화가 발생했다"며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재계 역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브랜드 윤리와 기업 가치에 민감한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제품의 품질을 넘어 기업의 역사 인식과 사회적 태도 자체가 소비 선택의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가치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광화문 스타벅스 앞에서 시작된 불매 움직임은 이제 단순한 커피 브랜드 논란을 넘어 한국 사회 민주주의 기억과 역사 인식을 둘러싼 또 하나의 사회적 전선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편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오는 26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을 다시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신세계그룹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진행된 스타벅스코리아의 부적절한 마케팅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직접 사과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날 자리에서는 그룹 차원의 자체 진상 조사 결과와 재발 방지 대책도 함께 발표될 예정이다.
앞서 정 회장은 논란 직후인 지난 19일에도 "5·18 민주화운동 영령과 유가족, 국민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드렸다"며 "그룹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였던 지난해 4월 16일 스타벅스가 '사이렌(Siren) 클래식 머그'를 출시했던 사실까지 재조명되면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으며, 과거 정 회장의 '멸공' 발언까지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며 신세계그룹 전체를 향한 비판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 회장과 손정현 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현재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된 상태이며, 서울경찰청의 수사를 앞두고 있다.
일반 시민은 물론 일부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스타벅스 이용 자제 움직임이 나타나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향후 기업의 역사 인식과 사회적 책임 기준을 어디까지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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