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스승의 날을 맞아 교권 추락과 교육 불신이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한 시대 참교육자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숙례(李淑禮)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장의 10주기 추모문집 <사랑과 그리움, 파랑새의 추억>(도서출판 가온)은 오늘날 사라져가는 '참스승'의 의미를 조용히 일깨운다. 씨 뿌리는 마음으로 평생 아동교육에 헌신했던 그의 삶은, 무너진 교단 앞에서 우리 사회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되묻게 한다.
오월이면 사람들은 카네이션을 떠올린다.
그러나 오늘날 '스승의 날'은 축하와 감사의 의미보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깊이 스승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날이 되어가고 있다.
교권은 무너지고, 교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민원과 고소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교실은 배움의 공간이라기보다 갈등과 불신이 교차하는 현장이 되었고, 교사는 학생을 올바르게 지도하기보다 혹여 문제에 휘말릴까 두려워 눈치를 보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한때 교단은 아이들의 영혼을 키우는 자리였다.
교사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비춰주는 등불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교육의 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존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함께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런 시대일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이름이 있다. 바로 이숙례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장이다. 1924년 태어나 2014년 세상을 떠난 그는 평생을 아동교육과 참교육의 길에 헌신한 교육자였다.
최근 그의 10주기 추모문집 <사랑과 그리움, 파랑새의 추억>을 읽으며 문득 오늘의 교육 현실과 너무도 대비되는 한 시대의 '참스승'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추모집에는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미사여구가 많지 않다. 대신 평생 아이들과 제자들을 사랑했던 한 교육자의 조용한 발자취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특히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제자인 이혜경 시인(1983-1993 이대부초등학교 교사)이 남긴 '이숙례 교수님의 추모집을 편찬하며'라는 글은 오늘날 교육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혜경 시인은 "이숙례 교수님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씨 뿌리는 마음으로 아동교육의 씨를 뿌리고 가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참으로 울림이 큰 표현이다.
오늘날 교육 현장은 성과와 경쟁, 입시와 평가에 매몰되어 있지만, 진정한 교육은 원래 '씨를 뿌리는 일'이었다. 당장 결과를 얻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한 아이의 마음속에 사람다운 품성과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일이 교육이었다.
이숙례 교수는 바로 그런 교육자였다.
제자들의 기억 속 그는 권위로 군림하는 스승이 아니라, 끝까지 교육의 바른 길을 몸소 보여준 사람으로 남아 있다.
이혜경 시인은 추모집을 읽으며 미국의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슈워츠 교수를 떠올렸다고 했다. 루게릭병으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끝까지 사랑과 용서,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했던 모리 교수처럼, 이숙례 교수 또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교육의 가치를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회고는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교육 현실을 향한 조용한 질문이다.
과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아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보여줄 ‘참스승’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남아 있는가.
교사는 아이를 사랑하되 훈육은 하지 못하고, 생활지도를 하면 민원이 제기되며, 학부모의 항의 앞에서 교육적 판단조차 위축되는 현실 속에서 과연 누가 교육의 사명감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겠는가.
교육은 단지 지식을 소비하는 서비스 산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길러내는 가장 오래된 공동체의 약속이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면 교사를 탓하고, 아이가 상처받으면 학교를 공격하며, 문제 해결보다 책임 추궁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 결과 교사는 학생보다 먼저 학부모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교실은 존중보다 불신이 앞서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교육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숙례 교수 같은 교육자들이 존경받았던 시대는 단순히 권위주의 시대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 시대에는 적어도 '교육은 아이를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라는 공동의 믿음이 존재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어쩌면 바로 그 믿음인지도 모른다.
이혜경 시인은 추모글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씨 뿌리던 귀한 손길이 계셨기에 아직 우리 어린이들에게는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헌사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져가는 교육 현실 속에서도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읽힌다.
스승의 날이면 우리는 늘 '스승의 은혜'를 노래한다. 그러나 정작 교사가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사회가 얼마나 존중과 신뢰를 보내고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카네이션 한 송이보다 더 필요한 것은 교사가 아이를 바로 가르칠 수 있는 사회적 신뢰와 교육의 품격 회복이다.
이숙례 교수 같은 스승이 다시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 아이들이 시험 점수보다 먼저 사람의 향기를 배우는 교실. 그리고 교사가 두려움 없이 아이들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오늘 '스승의 날' 우리가 진정 되찾아야 할 교육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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