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과정에서의 고대사 관련 발언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금기처럼 다뤄져 온 고대사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의 문제 제기를 두고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는 찬반으로 엇갈린 반응을 보이며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주류 역사학계 "유사역사 확산 우려"
일부 강단 역사학계와 관련 학술 단체들은 대통령의 발언이 자칫 '유사역사학'을 정당화하는 신호로 오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 연구는 검증 가능한 사료에 기반해야 하며, 근거가 불분명한 문헌이나 신화를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은 학문의 기본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환단고기' 논쟁과 관련해 "이미 학문적으로 위서 논란이 정리된 사안을 다시 공론장에 올리는 것은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대통령 발언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 고대사 음모론이나 과장된 민족주의 담론이 확산되는 점을 문제 삼으며, 공적 발언의 무게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시민사회·독립운동계 "문제 제기 자체를 봉쇄해선 안 돼"
반면 시민사회와 독립운동 관련 단체, 재야 사학계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을 “고대사 연구의 빈곤함과 폐쇄성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광복회는 공식 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발언은 특정 위서를 역사로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 역사학계는 고대사 문제만 나오면 봉쇄부터 하느냐는 질문”이라며, 문제 제기 자체를 ‘환빠 논쟁’으로 희화화하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광복회는 또 “박은식, 신채호 등 독립운동 선열들은 일제강점기에도 민족 정체성의 출발점으로 고대사 정립을 중시했다”며 “고대사 연구가 더 이상 조롱과 금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료 중심은 방법론이지 목적은 아니다"
일부 시민사회 인사들과 역사 연구자들은 '사료 중심'이라는 강단사학의 논리를 두고도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문헌 중심 연구는 중요하지만, 사료 부족을 이유로 연구 자체를 회피하거나 논쟁적 주제를 배제하는 태도는 학문적 성실성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고대사 서사화와 같은 주변국의 역사 전략에 비해 한국의 고대사 연구가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는 점에서, 공적 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의 역할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학문 자유 vs 역사 주권" 충돌 지점
이번 논란은 단순히 ‘환단고기’의 진위 여부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고대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평가다. 학문적 엄밀성과 국가·민족 정체성, 역사 주권 사이의 긴장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학문은 정치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역사학 역시 사회적 책무와 시대적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공개 토론 요구 확산
광복회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공개 토론회와 학제 간 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봉쇄와 낙인 대신 공개적 검증과 토론이 이뤄질 때 고대사 연구의 신뢰도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쟁이 또다시 이념적 공방으로 소모될지, 아니면 고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지는 역사학계와 사회 전체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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