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분단문학'의 태두 이호철 작가, 뇌종양 투병 중 18일 오후 타계

  • 등록 2016.09.19 07: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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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원산 출신 월남작가...전쟁·남북 분단의 아픔 다뤄
1955년 황순원 선생에 의해 ‘문학예술’을 통해 ‘탈향’을 발표하며 등단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대한민국 분단문학의 태두(泰斗) 이호철 작가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故人) 올해 6월 뇌종양 판정을 받은 뒤 투병하던 중 최근 병세가 악화돼 지난 18일 오후 7시 32분 서울 은평구의 한 병원에서 운명했다.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직접 체험한 고인은 남북 분단의 비극을 압축된 필치와 자의식이 투영된 세련된 언어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가다.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으로 동원되어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뒤 이듬해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원산중학교와 원산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교내 문학서클의 책임자를 맡을 정도로 글솜씨가 뛰어났다. 부산피난 시절에는 부두 노동자 미군부대 경비원 등으로 일했는데 이런 경험이 초기 작품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1955년 소설가 황순원 선생에 의해 문예지 ‘문학예술’을 통해 단편 ‘탈향’을 발표하며 등단한 고인은 이후 약 60년간 장편 ‘소시민’, ‘서울은 만원이다’, ‘남풍북풍’, ‘門(문)’, ‘그 겨울의 긴 계곡’, ‘재미있는 세상’, 중·단편 ‘퇴역 선임하사’, ‘무너지는 소리’, ‘큰 산’, ‘나상’, ‘판문점’, 연작 ‘남녘사람 북녁사람’ 등 수십 편의 작품을 통해 전쟁과 남북 분단 문제에 천착했다.

특히 분단의 아픔을 그린 주옥같은 작품들인 ‘탈향’, ‘소묘’, ‘파열구’ 등은 리얼리즘의 한 축을 보여줬다.

그의 대표작은 1961년 ‘사상계’에 발표된 ‘판문점’. 판문점을 통해 문학적 변모를 하고 지평을 넓힌다.

고인은 ‘닮아지는 살들’, ‘무너지는 소리’ 등을 발표한 후 197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두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고인은 1974년 박정희 정권 당시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운영위원으로 유신헌법 개헌 반대 서명을 주도했다가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혐의로,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기도 했다. 문인간첩단 사건은 법원의 재심으로 2011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런 작가적 변모는 작품 ‘물은 흘러서’와 ‘門(문)’ 등으로 표현된다.

고인은 대한민국 주요문학상도 휩쓸었다. 현대문학 신인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3·1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한 고인의 작품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은 물론 독일,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 등 유럽과 영미권으로도 번역, 출간돼 호평을 받았다.

특히 독일에 번역된 ‘남녘사람 북녁사람’으로 2004년 독일 예나대학이 주는 국제 학술·예술 교류 공로상인 프리드리히 쉴러 메달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또 미국 등 여러 나라에 초청돼 낭독회를 열고 한국의 분단 현실을 널리 알렸다. 2011년에는 팔순을 기념해 고인을 따르는 문인, 예술인 등이 주축이 된 사단법인 ‘이호철 문학재단’이 발족했으며 최일남, 이어령, 신달자, 김승옥 등 동료 문인과 지인, 제자 등 87명의 글을 모은 기념문집 ‘큰산과 나’가 출간됐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 한국소설가협회 공동대표, 한국문인협회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민자 여사와 딸 윤정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이며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장지는 광주광역시 국립 5·18 민주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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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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